3분대의 벽.
코로나가 터진후 시작한 러닝은 취미를 넘어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파이널리스트(?)급인 10km 39분대에 매일 도전했습니다.
폐와 다리가 튼튼했는지 어느덧 분당 몇초씩만 더 당기면 되는 순간까지 왔었죠.
하지만 코로나로 시작한 러닝은 아이러니컬하게 코로나가 끝나며 함께 사라졌습니다. 몇달씩 해외에 가다보니 훈련 루틴은 깨져버리고 이젠 완주하는것조차 힘이 들었죠.
그러다보니 러닝 와치를 보며 1초라도 늦게들어온 날엔 자책하고 쓸데없는 러닝화만 탓하곤 했어요. 그렇게 골인 지점에서 시계를 보는게 두려워지던 시기.
오늘은 아예 시계를 풀고 달려봤어요.
온라인상에 기록이 안남는다는 생각에 아주 편하고 느리게 달릴 수 있었죠.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저 내 기록에 방해꾼이었지만 오늘은 그들의 즐거운 표정까지도 저를 미소짓게 했습니다.
거친 내 호흡에 가려 들리지도 않던 노래들은 가사를 음미하며 흥얼거릴 수 있었고 달리기는 원래 이렇게 재밌는거라고 알려줬네요.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렇게 1년 넘게 1초라도 더 줄여보고자 남산을 오르내리고 비가오나 눈이오나 연습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 무대뽀 정신이 평생 나를 만든 8할이기도 하고요.
어제 끝난 대회도 그럴겁니다. 바리스타들은 점수와 관계없이 그냥 커피를 내리는게 훨씬 즐겁겠지만 때론 0.1점이라도 더 따고자 밤낮 가리지 않고 훈련하는것이 지금의 그들의 커피를 만들어 줄테니까요.
하지만 오늘 제가 그랬듯 이렇게 기록과 점수를 내려놓으면 더 즐거운것이 보일겁니다. 아니, 이제 그래야할 시간입니다. 경쟁은 끝났고 축제만 남았으니까요.
챔피언 신창호 바리스타님 축하드리고 멜번에서 만나요.
또 밀란 이후 지금까지 대회생각만 했을 우리 밀란팀 두 분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미선님 제가 좀 더 좋은커피를 준비해드렸어야하는데 죄송합니다.
끝으로 모든 참가선수들 내일부터는 저처럼 시계를 풀고 그저 커피로서 즐길수있기를.
P.S 저는 이제 즐런만 할거라 비록 3분대 기록은 포기했지만 혹시 압니까. 신 바리스타님처럼 10년후에 환갑즈음 갑자기 3분대를 깨고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