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

(중남미 산지 방문기) 2018.10 에필로그

Jeff, Coffee Me Up 2018. 10. 11. 06:34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사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아니다.
이 지구가 내 고향이고 내가 눕는 곳이 내 집이니까.

게다가 집에 들어 간다고 반겨주는 이 하나 없으니
서울 집은 그저 '주 거주지' 이며 '내 소유지' 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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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꽤 오래 집을 비웠던것 같다.

옛날에 회사원 시절, 용감하게 세계일주 한답시고
1년 가까이 방랑하던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한달쯤 비우지는 않은것 같다.

커피를 시작한 이후 꼭 어디 나갈때는 일이 생기던데 그냥 머피의 법칙이겠지?

돌아가는 이유가 꼭 돈을 벌러 들어가는건 아니다.
벌려고 치면 여기서도 벌겠지.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거고 욕심은 원래 없는 편이니까.

사실 일과 커피 욕심은 매우 큰편인데

흔히 말하는 '능력' 그러니까 좋은집, 좋은차 그런건 별로 와닿지 않는다는 뜻.

그럼에도 내게 한가지 물질적 욕심이 하나 있다면 '비행기 욕심'이다.

옛날엔 그런 생각을 해본적 없는데 커피때문에 워낙 장거리를 다니고 많이 타다보니 이젠 돈이 좀 생긴다면 비즈니스를 타고 다니고 싶다는거?

사싱 까놓고 보면 인간세상에서는 절대 아닌척해도 돈에 의한 계급이 존재하는데 그것의 끝판왕이 바로 비행기다.

이코노미 티켓이면 (=즉, 돈이 없으면) 이미 티켓을 받으러 갈때부터 엄청난 줄을 서야하고

입출국 및 보안검사도 오래걸리고 (한국은 아직 패스트트랙이 없지만)

비행기 탈때도 윗분들 (=즉, 돈 많은분들) 먼저 다 타서 앉으셔야 들어간다.

좌석이 좁고 불편한거야 이미 다들 알고있는 내용이겠지만 이코노미에서도 더 싼표는 비행기 맨 끝으로 배정이 되는경우가 많고

이는 고작 비프or피쉬 2가지 기내식의 선택권조차 박탈당할때가 많다는 사실.

다행히(?) 나는 짐을 절대 안부치는 사람이니 수하물이 꼴지로 나오는 굴욕은 당하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의 설국열차 꼬리칸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렇다고 비즈니스를 타자니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 추가된다.

내가 이 말을 하고 있는 이유는 지금 내가 공항에서 당장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때는 그냥 저냥 오긴했는데 갈때는 환승포함 무려 25시간이 넘게 걸린다.
에콰도르의 키토-멕시코시티-몬테레이를 거쳐서 서울로 오는 지옥의 비행이다.

마일리지 긁어모아서 비즈를 탔을때 느꼈던건 25시간이 아니라 250시간도 즐겁다는 사실인데
이런 지구를 도는 장거라 비행은 정말 돈 욕심이 난다.

나에게 비즈니스 태워주는 사람이 있으면 영혼이라도 팔고싶을 만큼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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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이 글을 쓰다가 쓱 카운터에 가 보니,  편도 비즈 업글 특가가 75만원이라고 한다.

75만원이라...

언뜻보면 초 장거리 비행치곤 싼것 같은데 이걸 시간으로 나눠보니 시간당 3만원.

다시 말하면 이걸 사는 순간 가만히 앉아서 시간당 3만원씩 뿌려야 한다는거고
이걸 안사면 앉아서 시간당 3만원씩 버는거다 (...)

요즘같은시대에 시간당 3만원짜리 아르바이트가?!

이 아르바이트는 하는 일은 전혀 없으며,
주는 밥 잘 먹고 음료에 술까지 제공하고 영화감상은 덤이란다.

이렇게 보면 절대 살 일이 없어지는거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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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누구누구는 룸살롱 같은데 가서 하룻밤에 75만원이 아니라 100만원도 쓰고 온단다.

난 그런곳에 가본적도 없으니 이참이 룸살롱 한번 갔다왔다 치고(?) 업글을 하는건 꽤 합리적인 소비가 아닐까도 싶은...(억지겠지?)

하룻밤의 쾌락이 같은것이라면 비즈 업글은 꽤나 멋진 소비인듯 하다.

하지만 돈도 많이 벌어본 사람이나 잘 쓸 수 있는 법.

그래서 난 나를 안다. 그리고 보인다.

정중히 내 이름을 부르며 그리팅을 하고 폼나는 와인에 침대가 제공되는 비즈니스 업글은 개나 줘 버릴 거라는거.

그리고 잠시 후 항공사 카운터를 얼쩡대다가 눈 질끈 감고 '설국비행기' 꼬리칸을 향해 들어갈 내 모습이 선명하다.


P.S

그간 중남미 커피출장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잠시후(25시간후) 서울 도착하자마자
몇시간 쉬고 브루잉 첫 수업을 시작으로 본격 다시 오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