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

연극이 끝나고 난 뒤

Jeff, Coffee Me Up 2019. 7. 28. 21:01

벌써 20여년 전이네요. 대학교 신입생 시절,

당시 대구에서 대학을 다녔던 저는 연극반 활동을 했었는데 동기들을 제치고 두번의 공식무대에서 모두 주인공 역할을 맡았었습니다.

실력보다는 아마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가 컸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극반은 어디나 그렇듯 '직업' 수준으로 활동을 해야해서 학과 공부는 
사실상 접고 연극에만 매진해야했습니다.
그래서 제 동기 중 일부는 졸업 후 극단에서 아직 배우생활을 하고 있지만 저는 진작에 포기했었습니다.

내 길이라는 생각도 안했고 아마 그걸로 먹고 살기가 어렵다는것도 이미 알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가끔 그 때 생각이 납니다.

큐 사인과 함께 무대에 올라가서 주인공을 비추는 롱핀 조명이 켜지면 처음엔 빛이 너무 밝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이내 제 시야에 관객이 눈에 들어오고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후 부터는 극의 주인공으로 빙의하여 잠시 다른 삶을 살며 마음껏 즐기고 왔지요.
그래서 그런 지 '연극이 끝나고 난 뒤' 에는 허탈함이 크게 찾아옵니다.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갔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 느낌?
텅 빈 무대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정말 해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려운 감정이지요.
  
커피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카페라는 무대에 배우가 되어서 관객에게 커피를 이야기하고 관객이 느끼는 감정을 하나하나 읽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이렇게 무대가 끝난 후 느끼는 감정도 연극과 별로 다르지 않고요.

하지만 그떄와 다른 점이 있다면 '허무함' 대신 내일은 또 어떤 커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해줄까를 떠올린다는 점이군요.

그래서 이런 지금의 마음이 변치 않아서 20년 후에도 이 생활을 하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봅니다.

'커피 좀 안다'고 Bar 밖의 활동을 많이 하기 보다는 영원히 바리스타로 남아서 손님들을 더 즐겁게 해주고 싶습니다.

'연기 좀 한다'고 연출자로 가는게 아니듯, 바리스타는 끝까지 바리스타니까요.
그래서 앞으로는 수업도 더욱 줄이고 제 본분을 다 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일요일인데도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내일은 라 일루시온 등 새로 볶아둔 맛있는 녀석들과 함께 저녁에 을지로 커피인쇄소 에서 뵙겠습니다.

* 사진 짤은 정말 희귀한 20년전 사진 ㅋㅋ